[현장] 술람미가 써 내려간 <사도행전> ‘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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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간으로 지난 16일 오후 7시. 한국과 6시간 차이가 나는 지구 한쪽 어느 나라에서 ‘선교사의 딸’ 은지(가명. 12)는 안식일 예배를 마치자마자 식사도 거른 채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한국에서 열리는 ‘10/40 세계선교대회’를 보기 위해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술람미 언니들이 뮤지컬 <사도행전>을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본방 사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안식일에는 컴퓨터나 인터넷을 하지 않지만, 이날만큼은 예외였다. 은지에게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몇 해 전,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엄마아빠 손을 잡고 따라왔던 낯선 선교지. 말도 통하지 않고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날마다 울음으로 버텨야 했던 때, 우연히 본 술람미의 <사도행전>은 아이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울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며칠 후 학교 가는 길, 은지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는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선교지로 올 거예요. 하나님께서 저를 여기에서 만나시려고 이곳으로 보내주신 것 같아요. 사도 바울은 죽을 때도 불평하지 않았잖아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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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내용을 축약한 약식 공연. 술람미는 변변한 무대장치도, 분장이나 의상도 갖추지 않은 채 2시간짜리 대작을 30분 남짓으로 압축해야 했다. 그러나 감동의 깊이는 얕지 않았다. 스데반의 순교와 다메섹에서 사울의 회심 그리고 베드로의 꿈을 통해 말씀하신 이방인 전도와 죽기까지 순종하며 나아가는 바울의 삶을 부족함 없이 그려냈다.
선교사들의 사업보고가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면, 술람미의 선교 뮤지컬 공연은 ‘꽃’이었다. 내레이션은 스토리라인을 뒷받침했고, 드라마는 탄탄했다. 배우들의 진심이 녹아든 열연은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했다. 무대 위의 배우와 객석의 관객이 아닌, 설교자와 구도자 같은 상관을 이뤘다. ‘이방 민족을 향해 택하신 하나님의 그릇’ 바울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세계 복음화의 사명과 부르심을 되새기게 했다.
좋지 않은 시력 때문에 장막을 수선할 때마다 바늘에 찔렸지만, 이상하게도 손이 아닌 가슴이 아프더라는 바울의 대사에서는 이기적인 내 성품이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군병의 날카로운 창이었고, 모나고 거친 내 입술이 십자가의 녹슨 못처럼 그를 상하게 했고, 내면에 깊숙이 숨어 있는 자아가 가시면류관처럼 그분을 아프게 했으리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바늘... 참 여러모로 쓸모 있는 물건입니다”라는 독백은 과연 나의 ‘바늘’은 무엇이며, 나는 그 ‘바늘’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짚어보게 했다.
넘버들도 주옥같았다. 곡조는 찬양처럼 들려왔고, 가사는 간증처럼 다가왔다.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도행전’ 평안과 만족과 성공을 향한 꿈을 버리고 인내와 고통, 포기로 걸으며 주께서 주신 꿈대로 살겠다는 바울의 고백을 담은 ‘꿈을 살리라’ 형장에서도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스데반의 모습을 그린 ‘순교’ 하늘의 빛을 본 자는 세상에 눈이 멀고 세상에 눈먼 자 서툰 세상 길을 걷는다는 ‘은혜의 항해’ 바울과 예수님의 대화를 노래로 구성한 ‘열린 하늘’ 새로운 시대를 향한 부르심과 명령을 되새긴 ‘먹어라 살아라’ 등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감동의 울림은 무대나 객석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2010년 초연 이후 벌써 수십 번이나 공연했지만, 새삼 감정에 북받친 단원들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는 관객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언어는 달라도 마음이 통했는지 외국인 중에도 울음을 터뜨리는 이가 보였다. 응석받이 개구쟁이 아이들도 단 위에서 눈과 귀를 떼지 않았다.
‘선교사의 딸’ 은지는 그날 <사도행전>을 보면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결국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아로새겼다. 술람미의 <사도행전>은 그렇게 또 한 장 완성됐다. 하지만 막을 내리고 조명이 꺼진 텅 빈 예배당에는 이들이 남긴 여운이 잔향처럼 맴돌았다. 당신의 <사도행전>은 무엇이냐는 묵직한 물음을 던져놓은 듯했다.
“사도들의 피와 눈물, 땀과 열정으로 이어진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이 났지만, 사도행전 ‘29장’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물과 기도로 사도행전 29장을 써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사도행전, 내 이웃의 사도행전, 우리 가족의 사도행전, 우리 교회의 사도행전이 마치 불꽃처럼 사방에서 일어나는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작품의 마지막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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