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리스도 정예 강군 육성하는 선교사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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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오전 4시30분을 가리켰다. 여기저기서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와 나지막이 속삭이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선교사들의 기상 시간이다. 밖은 아직 동도 트지 않았다. 이들이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자 그제야 먼발치에서 닭이 울었다.
‘닭보다 더 일찍 일어나 새벽을 깨우다니!’
1000명선교사훈련원의 하루는 그렇게 열렸다. 열대의 남국이라지만,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꽤 쌀쌀하다.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은 다소 춥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한낮 최고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지만, 이곳도 겨울은 겨울이다.
간단한 세면을 마친 선교사들은 <파송의 탑> 주변에 모였다. 이곳 말로 ‘가제보’라 부르는 원두막에 삼삼오오 앉아 성경을 편다. 희미한 전등 빛에 의지해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 오전 6시까지 개인기도로 마음을 다잡는다. 간간이 들려오는 기침 외에는 침묵과 고요 그리고 집중뿐이다. 그제야 동산 너머에서 아침햇살이 어슴푸레 밝아왔다.
“나는 선교사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나는 할 수 있다!”
“한 번 선교사는 영원한 선교사다!!”
우렁찬 구호가 대지를 울린다. 발을 맞추고 손뼉을 치며 뜀뛰기를 한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진짜 육군훈련소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전투적’이다. 그야말로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 캠퍼스를 쉬지 않고 3바퀴쯤 돌아야 하니 족히 1.5킬로미터는 된다. 여자도 예외 없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아도, 그렇다고 적어도 열외는 없다.
여기저기서 무리에 뒤처지고,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기’로 종목을 바꾼 이들이 속출한다. 이 이른 시간에, 이 거리를 아침마다 뛰는 일이란 쉽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래도 선교사 사전에 포기란 없다. 밀어주고 끌어주고 기다려주며 낙오하지 않도록 곁에서 ‘돕는 손’이 되어준다. 그렇게 마음을 무장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체력을 키운다. 선교사로 담금질 되고, 성숙해져 간다.
검정 생활복은 어느새 땀으로 젖었다. 이마에도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정말 하기 싫어서 차라리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뛰고 나면 기분이 한결 상쾌해져요”
식사는 ‘생각보다’ 맛있다. 처음에는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했지만, 어느새 익숙해졌다. 선교지에 가면 이보다 훨씬 못하고 형편없는 식사를 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러니 식단이 어떻더라도 감사한다. 이게 다 성도들의 헌금이고 후원이다. 고맙고 소중한 마음이 더 커지는 이유다. 식사 후 설거지와 청소까지 모두 선교사들의 몫이다. ‘여기 진짜 훈련소 맞구나!’
기자가 현장을 찾았던 때는 선교사 훈련7주 중 2주차 과정에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마침 ‘선교 강조 주간’이었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전 강의가 시작됐다. 모든 선교사들이 각 출신 지역에 따라 모였다. 한국인들은 천명한인교회에 따로 모여 ‘연결식 성경공부’를 배웠다. 전 훈련원장이었던 주민호 목사가 쓴 <전하리>라는 제목의 문답식 책이 교재다. 1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부터 23과 ‘교회의 사명’까지 체계적으로 개인성경교수를 할 수 있다.
이날은 제6과 ‘구원의 경험’을 공부할 차례다. “구원은 어떻게 얻는 것일까?” “구원을 이미 경험한 사람은 죄의 습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죄를 회개하며 자백할 때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 들일 때 사람의 마음에 맨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무엇인가?”
심도 있는 질문을 주고받으며 진지하게 수업에 임한다. 재림신앙에 관한 근원적 질문부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은 무엇인지 오직 성경에서 명료하게 답을 찾아 제시한다. 때로는 가르치는 자가 되고, 때로는 배우는 자가 되어 선교사로서의 기본적 지식을 쌓는다. 역할을 바꿔가며 공부하다 보니 그 자체로 현장에서 맞부딪힐 상황을 미리 연습하는 시뮬레이션이 된다.
오후 2시. 원장 전재송 목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파송이 점점 가까워지는 새내기 선교사들에게 필리핀의 문화와 주의사항 등을 소개하며 “선교지에 배우러 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내가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 그래야 현지인도 여러분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이다. 선교사는 굳이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어도 된다. 오히려 주변을 밝히 드러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섬김의 사역을 강조했다.
전 목사는 “어떤 상황에서든 성육신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선교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라.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겸비함과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구해야 한다. 어디로 배정될지 모르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나아가야 한다. 우리 자신을 믿어서는 안 된다. 자기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것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길”이라고 권면했다. 원장으로서 그의 마지막 당부였다.
오후 4시. 약간은 나른한 시간이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눈빛은 여전히 초롱초롱하다. 노작 교육과 체육 시간을 갖는다. 설교나 패스파인더 등 각종 기능을 훈련하는 것도 이때다. 이날은 각국 선교사들이 자국 문화를 소개하는 ‘컬처나이트’를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었다. 뮤지컬 형식의 창작극이라는 사실만 귀띔할 뿐, 내용은 비밀이란다.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MZ세대 선교사들이 빚어낼 K-컬처가 궁금했다.
현재 캠퍼스에는 한국을 비롯해 몽골, 라오스, 필리핀, 캄보디아, 중국 등 6개국에서 지원한 96명의 청년이 선교사로 연단되고 있다. 언어와 문화, 피부색은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교사의 이름으로 하나된다.
오후 8시. 점호를 앞두고 잠시 여유가 있다. 치열했던 하루를 돌아보며 일상을 정비한다. 개인 묵상을 하거나 동료들과 캠퍼스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곁에 서 있는 이해언 선교사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빙그레 미소부터 지었다. 그의 고백에서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참으면 되고, 환경적으로 힘든 건 적응하면 돼요. 하지만 내가 품성적으로 더 변화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힘들게 해요. 더 변화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후 9시10분. 생활관의 불이 꺼졌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고된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 선교사들은 이렇듯 빌립보서 4장의 바울처럼 비천에도 풍부하고, 배부름과 배고픔에도 혹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가고 있었다. 능력 주시는 주안에서 모든 것을 감당할만한 강인한 하나님의 종으로 한 뼘 더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캠퍼스에 온 지 딱 한 달 반이 흘렀다. 꼭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수료 후 선교지로 나간다. 이들은 그렇게 세상의 때와 습관을 벗어내고 십자가를 앞세운 그리스도의 정예 강군으로 육성되고 있다. 아직 어디로 갈지, 가서 무얼 할지 모르지만 그게 부르심이고 새로운 시작이라 믿는다. 필리핀 카비떼 실랑 발루바드세컨 1000명선교사훈련원 캠퍼스에는 내일 새벽 4시30분에도 다시 불이 켜질 것이다. 파송일은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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