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새움교회 박인환 장로, 김차남 집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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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반쯤 됐을 거예요. 이장님이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안내방송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밖에 나와 보니 우리 집은 고지대에 있어서 그런지, 그때까지는 별 이상이 없었어요. 다시 들어가 침대에 누웠는데, 20-30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천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흙더미가 온몸을 덮치는 게 느껴졌다. 산사태로 흘러내린 토사가 벽을 뚫고 침실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천만 다행히 진흙은 가슴까지만 밀려들었다. 가까스로 일어나 몸을 지탱했다. 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기울었다. 전기마저 끊겨 온통 암흑천지였다. 전화도 불통이었다. 이미 거실과 현관은 토사에 막혀 나갈 수가 없었다.
남편 박인환 장로는 원주 재림연수원에 출타 중이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막막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순간, 침대 머리맡 무너진 벽 틈 사이로 빗줄기와 함께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손을 더듬어 가까스로 몸만 빠져나왔다. 주변은 이미 딴 세상이었다. 쏟아지는 극한 호우에 집 옆으로 졸졸 흐르던 개울은 폭포처럼 변했고, 늘 오르내리던 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기가 막혔다. 그래도 당장 몸을 피해야 했다. 방법이 없었다. 약 200미터 위쪽에 있는 J 장로의 집으로 향했다.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산사태로 막힌 길을 타고 올랐다. 물살이 얼마나 센지 몸이 휘청거렸다. 그나마 늘 다니던 익숙한 길이어서 조금이라도 안전한 지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옮겼다.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다시피 했다. 자칫 발을 헛디뎠다가는 급류에 휩쓸릴 아찔한 상황이었다. 떠내려온 바위와 자갈, 나뭇가지에 다리가 온통 스치고 까졌다. 움푹 파이고 꺼진 진흙에 발이 아팠다.
“장로님, 저에요. 문 좀 열어 주세요”
겨우 다다른 J 장로 집에서 문을 두드리니 식구들이 깜짝 놀라며 나왔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 ... “집이 무너졌어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동이 틀 무렵 조심스레 내려왔다. 아침에 본 광경은 더욱 기가 막혔다. 도대체 그 밤에,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 거친 길을 헤집고 올라갔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건 결코 내가 혼자 간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천사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눈물이 핑 돌며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의 김차남 집사. 그는 이번 장마 폭우와 산사태로 죽음의 문턱 앞에 섰다. 그가 사는 사부령길은 전국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 인근에서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난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그의 이야기에 기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보호라고 믿는다.
“지금이야 덤덤하게 돌아보지만, 악몽 같은 하룻밤이었어요. 그저 ‘이게 죽는 거구나’ 하는 암담한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고요. 계속 기도만 했죠. ‘주님! 제가 아직 해결할 문제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까지 도와주셨으니, 지금도 도와주세요’라고 예수님만 부르며 몸을 피했던 거 같아요”
무너진 집 앞에서 그는 두 다리가 풀리며 다시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넘어진 식탁이 거실을 가로막아 나무와 토사가 침실을 더 이상 덮치지 못하도록 가림막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만약 식탁이 그대로 있었더라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터. 하나님은 식탁으로 현관 앞을 막으시고, 침대 옆 벽을 허물어 그에게 피할 길을 내어주셨다.
게다가 만약 평소 남편이 주차하던 자리에 자동차를 대고 있었다면, 차도 잃고 인명사고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 부러진 전봇대가 집의 모퉁이로 쓰러졌으니 다행이지, 만약 정면을 향했더라면 그대로 침실을 덮쳤을 것이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니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감사와 찬양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부부는 이번 수해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아름드리 집이 복구조차 어려울 정도로 파손됐고, 각종 작물을 재배하던 밭은 뻘로 변했다. 그럼에도 부부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살리신 이유가 있을 거라며 다시 팔을 걷는다.
김차남 집사는 “모든 게 감사할 뿐”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던 박인환 장로는 “솔직히 처음에는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나’하는 마음에 원망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용기가 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허망하게 무너진 집을 보면서 ‘빨리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찬미가 나오더라”면서 “이제 세상살이 모두 단념하고 하늘만 바라보기로 했다. 혹여 내가 모르는 죄가 있다면 용서해달라고 회개했다.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부부는 이제 자신들을 살리신 하나님의 목적을 찾기 위해 무릎 꿇는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이 ‘광야’ 아니겠습니까. 광야에는 물도, 식량도 그렇다고 집도, 차도 없는 황량함뿐이지만 하나님이 계십니다. 말씀의 지팡이를 딛고, 주님 주시는 만나를 먹으며 감사함으로 광야 길을 걷겠습니다. 다시 빈손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지만, 낙심과 실망보다는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하며 나아가겠습니다. 다만, 우리 부부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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