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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바탕가스의 재림지기’ 윤청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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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7.01.2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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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여기까지 이끈 힘? ... 새벽녘 눈물 흘리던 엄마의 기도”
바탕가스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는 윤청아 선교사는 자신을 여기까지 이끈 힘은 새벽녘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엄마의 믿음이었다고 말한다.
윤청아 선교사는 바탕가스의 한 채식식당에서 봉사한다. 이곳에서 손님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한다. 흔히 생각하는 오지가 아닌, 대도시의 식당에서 선교한다. 무척 이례적이다. 천명선교사본부에서도 새로운 시도다.

자신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다는, 그래서 오히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더 기대된다는 윤청아 선교사와의 인터뷰다.

▲ 천명선교사에 지원한 동기가 남다르다고 들었는데?
- 나는 모태교인이지만, 습관적으로 교회에 가는 아이였다. 뭔가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서 안교임원도 하고, 봉사활동도 했지만 그게 딱히 신앙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재밌어서 한 게 대부분이다. 그러다 3학년 때 실습을 나가면서 슬럼프를 겪었다. 매일 책과 씨름하고, 실습을 하면서 마음에 뭔가 휑한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될까?’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급기야 스트레스성 질병이 생길만큼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게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다녔던 교회다.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 한번쯤은 성경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성경을 읽다보니 너무 재밌고, 배우면 배울수록 더 깊이 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다 전도회를 갔는데, 내가 아는 작은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대원들끼리 의지하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  

전도회에서 친해진 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천명선교사’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고, “가 보는 게 어때?”라는 짧은 권유를 받았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가 몇날 며칠을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천명선교사’라는 단어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과연 내가 1년 동안 하나님의 사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가득 찼다.

그러던 중, 2016년 1월 겨울방학을 맞아 SAY교회에서 파송한 필리핀 이사벨라봉사대에 참여했다. 약 2주일의 일정이었는데, 그 중 일주일 동안 서지호 목사님을 비롯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천명선교사훈련원에 들렀다. 그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 목사님께 당장 “저도 천명선교사에 지원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다.

물론, 그 전에 부모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교회에 다니지 않으시기 때문에 설득해야 했다. 아빠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지금까지 큰 탈 없이, 별다른 문제 안 일으키고 살아온 것은 모두 신앙 덕분이다. 신앙은 그만큼 나에게 소중한 것이고,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해야 된다’라는 생각이다. 허락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아빠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부랴부랴 휴학절차를 밟고, 짐 정리를 한 뒤 천명선교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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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사 활동에 어려운 점은 없나?
- 사실 대부분의 선교사가 오지로 파송된다. 그런데 이곳은 보다시피 대도시다. 그래서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정말 많이 실망했다. 통탄스러웠다. 당연히 시골의 낙후한 선교지로 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좀 달랐다. 처음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인 ‘네가 하는 게 아니다. 넌 내 뒤에만 있으면 된다’라는 말씀을 새기며 ‘그래, 분명 뜻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문득 이곳에서 설거지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우스갯소리로 ‘내가 여기서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가?’ ‘워킹홀리데이인가?’라는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처음에는 무척 많이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그때 나를 다시 잡아 준 것은 성경을 비롯한 이곳에서 읽은 많은 책이었다. ‘하찮은 일은 하나도 없다’라는 요셉의 고백을 읽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많이 노력했다.

▲ 본인이 생각했던 선교사 활동이 아닌데도, 보람이 드나?   
- 사실 이제는 시골이나 여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보람 있는 것은 ‘나눔’이다. 그들의 기도제목을 들으며 고통과 힘듦을 나누고, 말 한마디라도 먼저 건네며 힘을 주고 그 감정을 공유하곤 한다. 그런 부분에서 보람을 느낀다.

▲ 이 경험이 앞으로의 본인 삶에 있어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나?
- 물론이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라는 어떤 의무감과 책임감보다는, 그냥 감사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서 전반적으로 내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땐 교회보단 내 ‘일’이 언제나 가장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이곳에 온 뒤로 나는 하나님을 첫 번째로 둘 수 있는 것을 배웠고, 이 소중한 배움을 얻은 것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다. 후회하지 않을 유일무이한 이유이다.

선교사 경험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르침이 있고, 나는 그분의 뜻대로 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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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래의 학생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자격증 취득이나 스펙 등 경쟁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홀로 먼 타지에 와서 1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걱정이 되지는 않나?
- 솔직히 처음엔 고민이 많이 됐다. 3학년이 끝나고 휴학하는 게 간호학과 학생에겐 그리 좋지 않다. ‘바로 면접을 봐야하는데 머리가 빈 상태로 간호지식을 물어보면 어떡하지?‘라는 현실적 걱정이 있었다. 게다가 토익 또한 만기가 되기 전에 빨리 취직을 해야만 하는 리스크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내가 배운 것은, 이전에 배웠던 그 무엇보다도 뜻 깊고 소중하다. 돈 주고도 못 살 값진 경험이다. 한국에 돌아간 뒤에 혹시 내가 생각했던 방향대로 가지 않거나,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기에 무엇이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 선교사 경험이 간호사라는 장래희망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나?
- 환자에게 다가갈 때의 마음가짐이라든지, 분명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은 없다. 다만 내가 돌아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그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진리를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게 지금의 가장 큰 목표다.

▲ 다른 이들에게 천명선교사를 추천할 수 있겠나?
- ‘강추’한다. 그 이유를 말로만 설명해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 봐야 안다. 그저 ‘하나님이 이끌었다’ ‘하나님의 가르침 아래’라고 말로만 들을 땐 체감되지 않는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이 경험은 무조건 겪어봐야 아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 천명선교사를 지원하려는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준비하지 말고 그냥 오라는 것이다. 인간의 준비는 별 쓸모가 없다. 다만 ‘빈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도 선교사에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전공을 살려 온갖 약품과 의학지식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걸 전혀 쓸 수 없는 곳으로 보내셨다.

처음에는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하나님께서 나를 왜 그렇게 연단시키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그분의 뜻을 발견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뜻이나 계획대로 선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무엇이 됐든, 모두 다 받아들일 생각으로 와야 한다.

News_7900_file4_v.png▲ 과연 무엇이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생각하나?
- 물론 첫 시발점은 친한 언니의 한마디 권유였지만, 이 계획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것은 엄마다. 이곳에서 묵상하면서 엄마가 나와 아픈 내 동생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가장 많이 생각났다. 엄마는 아픈 동생 때문에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깊게 주무시지 못하곤 했다.

엄마가 나와 동생을 위해 새벽까지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엔 ‘그냥 기도하는가 보다’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나이가 들고, 이곳에 온 뒤로는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생각난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매일 그렇게 기도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엄마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나의 선택, 나의 결정이 아닌, 엄마의 기도 때문에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솔직히 이 인터뷰가 부담이 된다. 기사가 나를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이 부각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잘해서, 내가 어떤 기술을 가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 가지셨다’라는 점을 우선적으로 봐 주시면 좋겠다. 오는 2월에 귀국하는데, 선교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을 새로운 선교지라 생각하고 활동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사랑합니다~

인터뷰 진행 = <삼육대신문사 챌린지 해외원정대> ‘이끌림’ 팀
참가자: 안연주(영문) 윤수경(영문) 표수진(영문) 이다혜(영문) 강주은(영문) 엄강현(생활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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