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Interview-e] 고남교회 이형우 장로, 이광자 집사 부부
“해외 건축봉사,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전하는 확실한 방법”
“이건 중독이에요. 그게 아니고서는 이렇게 계속할 수가 없어요”충남 태안 고남교회 이형우 장로 부부는 2014년부터 매년 해외 건축봉사에 참여하며 복음의 씨앗을 심어왔다. 네팔, 에티오피아, 케냐,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 10여 개국을 오가며 무너진 교회를 복원하고, 학교 강당을 리모델링하고, 운동장을 보수하고 있다. 그들의 사역에는 변함없는 신앙과 희생, 부부와 자녀들의 따뜻한 동행이 깃들어 있다.친척들은 “그 고생을 하고, 그 돈을 쓰면서까지 왜 그렇게 다니냐”며 이해하지 못한다. 교인들조차 “해외선교 가는 게 부럽다”고 말하고는 한다. 이광자 집사는 “고생이라 말하는 쪽도, 부럽다고 하는 쪽도 실제 경험이 없어서 그래요.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망울이 계속 떠올라 다시 가지 않을 수가 없어요”라며 자신이 그 기쁨과 감사에 중독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전부임을 깨닫습니다처음 간 곳은 네팔이었다. 목회를 마치고 자급사역 중인 송해섭 선교사 부부가 있는 지역에서, 뼈대만 남아 있던 교회를 리모델링하고 학교 운동장을 공사했다. 처음에는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도회를 여는 것도 아니고 침례자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2~3주 동안 묵묵히 건축 일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어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이 장로가 소속된 ‘밀알건축봉사단(단장 김광윤)’은 매년 사역지를 바꾸며 건축봉사를 이어간다. 놀라운 건, 매번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정확히 채워진다는 점이다.“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자재 담당, 전기, 미장, 용접까지 사람이 딱딱 맞춰져요. 단장도 늘 놀라죠. 이건 기적입니다”최근에는 타일 마감, 복도 인테리어까지 고급 자재로 시공했다. 미국의 한 장로가 1200만 원을 후원하는 등, 뜻 있는 이들의 도움으로 더 나은 시설을 만들어가고 있다.“해외에 나가면 하나님의 일이 내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돼요. 그래서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되죠”집에 돌아오면, 자기도 모르게 다음에 떠날 가방을 다시 꾸리게 된다는 그. 그런 마음은 경험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봉사 중 겪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조심스레 들려줬다. ■ 어려움은 있지만, 은혜가 더 큽니다후진국의 낯선 환경, 자녀들에 대한 걱정, 부상과 병원 치료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다.이형우 장로는 네팔 세 번째 방문 당시, 톱질 중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급히 현지의 위생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일정을 마친 뒤 귀국했지만, 손가락은 시간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결국 서울의 신경 접합 전문병원을 찾아갔고, 신경이 이미 녹아 없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최대한 치료를 받았지만, 지금도 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는다.이광자 집사도 경사 65도의 언덕을 수십 번 오르내리다가 허리에 큰 무리를 겪었다. 출국 당일 비행기에서도 단 한숨도 자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너무 아파서 비행기에서 한숨도 못 잤어요. 돌아와서 11개월 동안 서울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죠. 그래도 또 짐을 싸요. 안 가면 허전하니까요”마을 이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해외에서도 마을 방송을 챙겼고, 50만 원이 넘는 전화요금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기쁨이 더 크다”라며 웃어 넘긴다.또 한 번은 부부가 출국한 지 3일 만에 큰딸이 혼자 있다가 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딸은 부모 걱정을 덜어주려 3주 가까이 말을 아끼고 있다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에야 전화를 걸어 사실을 털어놓았다. 농사와 낚싯배 대여 사업을 하는 이 장로는 주로 농한기(11월~3월)에 건축봉사를 떠난다. 하지만 어느 겨울에는 집에 돌아왔더니 보일러와 수도가 동파된 적도 있다. 며칠간 추위에 떨고, 밥도 제대로 해 먹지 못했지만 그는 “단 한 순간도 해외건축봉사를 후회한 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처음에는 ‘며칠 고생하고 오는 일’쯤으로 생각했던 해외 건축봉사. 그러나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일은 가족 모두의 헌신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됐다. 그들의 사역은 단지 무너진 건물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신앙을 더욱 굳게 세우고 복음의 기초를 놓는 일이었다. 손해를 보기도 하고 건강을 잃기도 하지만, 부부는 매년 어김없이 짐을 챙긴다.이광자 집사는 “남편이 성전 단상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기도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라며, 그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고 그 나라 전체에 복음이 전파되길 기도했던 순간을 떠올렸다.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고 했던 이형우 장로는 “이제는 어떤 분야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생겼다”며 웃었다. “김광윤 단장도 저한테 벽돌 쌓는 일이나 용접 같은 건 의견을 물을 정도예요. 집에서도 보일러를 혼자 설치하고, 차고도 만들었어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예요”“저 사람들이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저 고생을 하고 있나,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런데 우리는 말없이 전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전도단은 해외에 가서 전도회도 열고 성경학교도 열지만, 우리는 정말 ‘일만’ 한다. 그저 우리가 일하는 모습, 땀을 흘리고 있지만 행복해하는 표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 주길 바라는 거다”라고 말하는 이 장로의 말을 들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해외 건축봉사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 하나님을 전하는 데, 이렇게 놀랍고도 확실한 방법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