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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에게 ‘장막 부흥회’는 재림교회 특유의 행사로 보일 수 있다. 우리 교회는 자연에 관심이 많다. 그러니 집이나 아파트, 호텔을 떠나 시골에서 야영하며 세상을 벗어나 세상 관심사나 유혹을 멀리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교제와 예배를 즐기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재림교회다운 게 어디 있을까?
사실 장막 부흥회는 재림 신앙보다 먼저 존재했다. 장막 집회는 미국 변방 개척지에서 등장했다. 땅이 광활하다 보니 정착민들이 서로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초로 알려진 장막 집회는 1800년 미국 켄터키주에서 장로교회가 개최했다. 1년 뒤 또 켄터키주에서 열린 장로교 장막회에 1만여 명이 참석했는데 장막회라는 이 개념이 감리교를 비롯한 미국 교단 사이에서 인기를 얻게 되면서 미국 변방을 넘어 전국으로 퍼졌다. 매년 여름 여러 교단이 서로 경쟁하듯 장막 집회를 개최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막 부흥회를 도입한 재림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창시자들은 장막 집회에 다니면서 성장했고, 밀러파는 장막 집회를 열심히 도입했다. 그러나 일부 초기 재림주의자들은 타 교단의 장막 집회가 술을 마음대로 마시는 소란스러운 행사라는 이유로 장막 부흥회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장막 부흥회는 영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땅이 넓을 뿐 아니라 구대륙과 달리 평등주의에 입각한 미국 사회에 안성맞춤인 행사였다. 신대륙에서는 모든 계층이 함께 모여 즐거이 야영할 수 있었는데 예배를 드릴 때 특히 그랬다.
게다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장막 집회를 전도 목적으로 자주 활용하다 보니 장막 부흥회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스콘신합회 경영 회의는 1867년 야영지에서 개최됐는데 300명이 모였다. 그 결과 전역에서 모인 교회 지도자들이 엘렌 화잇의 지도 아래 장막 부흥회의 도입을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1868년 5월 미시간주 배틀크리크에서 개최한 제6차 대총회 총회에서 실제로 이와 관련한 조치가 취해졌다. 셋째 천사를 따르는 자들이 장막 부흥회에 빠져 있으면 되겠는가라고 여전히 의구심을 품는 재림교인이 일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의. 이번 회의에서는 우리 교인들이 매년 업무 회의로 모일 때 장막 부흥회를 개최할 것을 권고하기로 함. 장막 부흥회는 일반적으로 시골 또는 시골에 준하는 부지에 야영장을 마련해 며칠 동안 개최하는 집회이며 현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와 몇몇 타 교단에서만 볼 수 있는 모임의 형태이다.”1
재림교회 최초의 공식 장막 부흥회는 1868년 9월 미시간주 라이트에서 개최한 미시간합회의 장막 부흥회였다. 1880년대가 되자 ‘장막 부흥회 기간’을 북미 지역에서 널리 인식하고 있었고 교회 정기 간행물에서도 언급되었다. 그렇다면 미국 밖에서 열리는 장막회는 어땠을까?
전 세계에서의 장막회
영국의 첫 장막 부흥회는 1807년 5월 31일 스토크온트렌트 근처에서 개최했다. 이 행사는 사람을 휘어잡으면서 논란을 몰고 다니는 미국의 부흥주의 설교자 로렌조 다우의 주도로 감리교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웨슬리 감리교도들은 그 모임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았지만 어쨌든 일단의 감리교인들이 장막회를 밀고 나갔고 그러다가 원시 감리교회라는 새로운 교단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장막 집회가 인기를 끌지 못했고 80년 뒤 빅토리아 여왕 치하 백성에게는 장막회가 상당히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1880년대에 영국에 들어온 미국 재림교인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에게 장막회를 납득시키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1884년 영국 재림교회에서 창간한 잡지 『현대 진리(Present Truth)』가 “미주리, 미네소타, 테네시, 캘리포니아”에서 연달아 열린 재림교회 장막 집회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미시간주 사상 최대의 모임이 9월 18~30일 잭슨이라는 도시에서 개최됐다. 영국 독자에게는 이런 야영지 모습이 생소한 광경일 것이다.”2
의심할 바 없이 “영국 독자들”은 장막 부흥회의 엄청난 규모에 놀랐을 것이다. 『현대 진리』가 미국 재림교회의 어느 정기 간행물에서 옮겨 적은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전화를 통해 우리는 잭슨뿐 아니라 세상과 연결된다. 물은 도시 상수도 시설에서 배관을 통해 공급된다. …배식대나 배식 텐트에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가격으로 식사를 제공한다.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접수받거나 배달해 준다.”3 물론 이 모든 일은 영국과 달리 미국의 여름 날씨가 덥고 대체로 건조하기에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미국 바깥에서 최초로 재림교회 장막회를 개최한 곳은 1879년 캐나다이다. 『현대 진리』에 기사가 소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887년 6월, 북미 지역 바깥 최초로 노르웨이 동부 지역 모스에서 장막 부흥회를 개최했다. 당시 유럽을 방문 중이던 엘렌 G 화잇과 아들 윌리가 모스 장막 집회에 참석했다. 엘렌 화잇은 당시 참석자들을 찍은 사진 왼쪽에 바로 보인다. 모스 장막 부흥회는 유럽 전역에 있는 모든 재림교인이 참석할 수 있는 행사로 홍보됐고 영국에서는 『현대 진리』에 광고를 싣기도 했다.
이 장막 부흥회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았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교회와 사업 전반에 큰 축복”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듬해인 1888년 여름 중앙유럽합회가 첫 번째 장막회를 개최했는데 “스위스 북부 트라멜란에서 개최한 이 장막회는 훨씬 큰 성공을 거두어 재림교인과 일반 대중 모두의 참석자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4
그 후 장막 부흥회는 유럽 전역과 다른 대륙으로 퍼져 정기적인 연례 행사가 되었고,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합회들이 저마다 연례 장막 부흥회를 개최했다. 장막 부흥회가 명실공히 재림교회 사회와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1 https://documents.adventistarchives.org/Minutes/GCSM/GCB1863-8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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