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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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단계
징계의 경험을 돌아보며
라몬 J. 카날스
목회 초창기에 담임했던 한 교회에서 나는 매우 부유한 가정 출신의 엔지니어를 만났다. 학력이 높고 인맥도 좋았다. 전임 목회자들은 교인 모두 알고 있는 그 사람에 관한 문제를 내게 언급하지 않았다. 내게 알릴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문제는 안식일 준수에 관한 것이었다. 안식일에 일하고 있었다. 여건이 될 때는 안식일을 지켰지만 대부분은 일했고 교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인 몇 명의 주장을 들어 보았다. “이 일에 관해 뭐라도 해야 합니다. 이분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어요. 이분이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따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 해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습니까?” 반면 이 일에 대해 덜 강경한 이들도 있었다. “아직 젊잖아요. 게다가 십일금과 헌금은 충실하게 드리고 있잖아요.”라고 이유를 들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일은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단계를 밟다
목회자로 부임했을 때 나는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듣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의 책임은 무엇인가?’ 성경과 예언의 신 그리고 『교회요람』을 살펴보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녹명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야 한다거나 그를 징계 목적으로 교회에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를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접근 방식이었다. 나의 선택은 그가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한 무리가 내게 부추기듯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지 호되게 위협하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압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전임 목회자들은 그 문제를 다루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부 교회의 구성원들이 주장하는 그 방법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먼저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그에게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방문의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던 그는 약간 긴장했다. 하지만 결국 나의 방문을 허락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안식일에 관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와 담소를 나누고 함께 기도한 뒤 그곳을 나왔다. 대립을 대비하고 있던 그는 매우 기뻐했다. 다음 방문에서도 대화를 나누고 함께 기도했다. 하지만 안식일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의 영적인 삶에 관해, 영적인 성장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하나님의 율법의 중요성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문을 계속하며 방문이 어느덧 규칙적인 일상이 되었다.
마침내 나는 안식일 문제를 꺼냈고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 “목사님도 알다시피 저는 여러 해 동안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많은 목사님이 다녀가셨지만 제게 안식일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일하는 회사에서는 안식일에 쉬고자 하는 그의 요구를 수용해 주지 않았다. “회사가 저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안식일에 쉬는 특권을 부여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야 하니 제게만 특권을 줄 수 없다고 했지요.” “다시 한번 노력해 보겠어요?” 내가 물었다. “이것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함께 노력해 봅시다.” 내가 간청했다. “이 일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원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안식일에 당신이 교회에 올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싫습니다.”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저는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시도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 시점에서 나는 그에게 이 문제를 교회에 알리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했다. 이제 교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것이다. “제게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가 반항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와 그의 가족을 돕고 싶을 뿐이라고 말해 주었다. 교회에 알리는 것은 다음 단계였다. 그와 기도한 후 나는 그곳을 나왔다.
때로 효과가 있다
다음 안식일, 그가 교회에 왔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던 그였다. 그날 그는 내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감사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가 말을 꺼냈다. “제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수년 동안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죄책감은 느끼고 있었지만 목사님처럼 제게 말해 주는 분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저를 돕기 위해 애쓰고 계신 것을 깨닫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 안식일 이후 그는 매 안식일 열심히 교회에 출석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자신의 안식일 문제를 확대하여 논쟁을 벌이지 않고 담임목사와 이야기하여 해결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교회 성도들에게 나누기까지 하였다.
그와 나눈 경험은 교회가 죄를 범한 형제자매에게 징계를 주기 전에 그들을 도울 단계를 밟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 단계를 사랑의 단계라고 부른다. 그들을 정말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방문하여 함께 성경을 공부하며 그들을 보살피는 것이 바로 그 단계이다. 이 단계를 실천한다면 극단적인 징계 조치에 이르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항상 그렇게 될까? 항상 일이 잘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됐습니다. 그럼, 필요 없겠네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이 단계가 효과적인 경우가 있다. 징계의 이유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 방법은 적절한 방법이다. 이 단계는 그들의 잘못을 벌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예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부르는 것이다. 그들이 이 부르심을 듣는다면 하늘은 기뻐할 것이고 사람들은 감사할 것이다.
교회가 모든 사소한 죄에 대해 사람들을 징계하던 시절이 있었다. 반대로 오늘날은 모든 것을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정직해야 한다. 문제를 피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교회는 깨어진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우리 각자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일종의 장애를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각자 치유가 필요한 장애를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의 형태로 그리고 한 교회로 연합한다. 잘못을 범한 성도들을 은혜와 사랑 그리고 용서로 이끄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난 은혜를 의식하고 헤아리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확실한 멸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 사랑으로 돕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라몬 J. 카날스 대총회 선교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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