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를 위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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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를 위한 가정
“모두를 다 맡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실 겁니다. 하지만 몇 명은 맡아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살림 파라그 박사와 아내 그레이스 그리고 이들의 세 딸은 파푸아뉴기니의 고산지대에서 선교사로 3년 반을 보냈고, 거의 20년 가까이 캘리포니아주의 보건부를 이끌었다. 그러던 중 전화를 받게 되었다.
“파라그 박사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총회에서는 박사님이 짐바브웨로 가셔서 트랜스-아프리카지회의 보건전도부장으로 봉사하시기를 원합니다. 아시다시피 새로운 질병이 대륙을 휩쓸고 있는데 대총회는 박사님의 독창적인 전문 지식이 이 진행을 늦추도록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에이즈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듯했고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전염되는지, 어떻게 질병을 퇴치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전염병에 직접 맞서야 하는 도전에 직면한 파라그 박사는 새로운 임무를 수락하고 짐바브웨의 수도인 하라레로 이사했다. 박사는 에이즈가 콘돔과 약물이 아니라 생활 방식 변경으로 대응해야 하는 성병이라고 믿었다.
“콘돔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 슬로건이 아프리카 전역의 광고판에 전시되기 시작했고, 편의점마다 포스터가 붙었으며, 많은 교단의 강단에서 설교되었고, 모든 학년의 교사들이 교실에서 가르치는 주제가 되었다.
짐바브웨 정부는 파라그 박사의 접근 방식이 효과가 있음을 보고 그에게 짐바브웨를 위해 초교파적 에이즈 책임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역할에는 유엔 에이즈 회의에서 짐바브웨의 대표로 봉사하는 일도 포함되었다.
“남편은 바빠도 너무 바빠요.” 아내 그레이스가 말했다. “바쁜 와중에도 불가능해 보이는 그 일들을 사랑하고 있어요.”
이 ‘불가능한 일들’ 중에는 에이즈 고아들도 포함되었다.
부모 없이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아이들이 도처에 있었고 그레이스의 마음은 그 한 아이 한 아이에게 닿아 있었다. 은퇴를 준비하며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중이었지만 부부는 한 가지 봉사 사역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느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들은 짐바브웨에 보육원을 열기로 결심했다.
“재림교회 학교 근처 3만 평 부지에 아이들을 위한 집을 지어야겠어.” 이렇게 결심한 파라그 박사는 적합한 땅을 찾아 짐바브웨 전역을 돌아다녔으나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일요일 박사는 수도 하라레 주변에 땅이 있을까 찾아보기로 결정하고 가능한 장소를 물색하며 하루를 보냈다. 해가 질 무렵 땅 찾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돌아오던 중 아말린다 도로에 빈 땅이 있는 것을 보았다. 차를 멈추고 보니 한 사람이 그 땅을 지키고 있었다.
‘왜 땅을 지키고 있지? 공터인데!’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공터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파라그가 물었다.
“이 땅은 크레스트 브리더스의 소유지입니다.” 경비원이 대답했다. “닭을 기르는 사람들이고 제가 그들의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넓은 땅인데 주인들이 보육원을 짓는 데 땅을 내줄 수 있을까요?” 파라그는 대화를 이어 갔다.
경비원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제임스 씨에게 물어보면 그 일과 관련하여 기꺼이 선생님께 답을 드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화번호를 드릴게요. 그런데 반드시 7시 30분 전에 전화를 거셔야 합니다. 제임스 씨는 그 이후로는 무척 바쁘거든요.”
파라그는 가슴 가득 희망을 품고 집으로 운전해 갔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셨고 또 우리를 보호해 주셨어. 만약 보육원이 세워지길 원하신다면 모든 일은 그분의 손안에서 잘 이루어질 거야.”
아침 7시 30분이 되자 파라그는 전화를 걸었다. “아주 중요한 일로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약속을 잡아 주실 수 있나요?”
“무슨 중요한 일이죠?” 제임스가 대답했다. “전화로 말씀하시죠.”
파라그는 먼저 기도한 뒤 제임스에게 땅에 관한 요청을 했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땅을 가지고 계시죠? 보육원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 땅을 조금 주실 수 있을까요?”
침묵이 흘렀다. 얼마 후 전화기 너머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제가 될 건 없지요. 내일 7시 30분에 그곳에서 만날까요? 얼마나 원하시죠?”
“3만 평 정도입니다.”
“그 정도면 괜찮겠네요.”
다음 날 아침 그들은 그 땅을 함께 걸었고, 저녁이 되기 전 파라그는 뉴스타트 어린이집을 위해 3만 평을 주겠다고 서명이 된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땅을 지키는 경비원이 애초부터 그곳에 없었다는 것이다.
독일, 미국, 아프리카의 친구들이 건축 자금을 지원했지만 책상, 침대, 이불, 그릇, 주전자, 식탁용 도구, 백 가지가 넘는 필수품들은 전무한 상태였다.
부부는 하나님께 다시 한번 불가능을 가능케 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기 부두에서 박사님을 기다리고 있는 화물 컨테이너가 있습니다. 바로 받으러 오실 수 있나요?”
파라그도 그레이스도 컨테이너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져오셨는지 확인하고자 부부는 부두로 달려갔다. 컨테이너의 강철 문을 열었더니 침대, 매트리스, 시트, 수건, 담요, 책상 등 ‘필수품’ 목록에 있는 모든 물건이 그 안에 있었다.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보낸 사람’을 알 수 없었다. “또 천사인가 봐요.” 그레이스가 말했다.
1997년의 일이었다. 25년이 흘러 170여 어린이가 그레이스 사모와 파라그를 ‘엄마’ ‘아빠’라고 불렀고 현재는 어린이 70명이 뉴스타트 어린이집에 거주하고 있다.
“어느 날 사회복지과에서 전화가 와서 고아 9명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레이스 사모가 그때를 회상했다. “9명 모두를 받을 수는 없었지만 3명은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대답을 했죠. 병원에 가서 3명을 택했는데 구석에 있는 작은 소년이 눈에 띄었어요.”
1년 6개월 된 아기였는데 철제 침대에 혼자 누워 있었다. 다리와 팔은 정상이 아니었고 완전히 버려진 아이였다. 그레이스 사모가 아이를 안아 주자 아이는 꼭 달라붙어서는 놓지 않았다.
“그 아이를 데려가고 싶지는 않으실 거예요.” 의사가 말했다. “몸이 아프고 절대로 걷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뇌가 없어서 평생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예요. 다시 내려놓으세요.” 그레이스 사모는 아이에게 ‘엘리사’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집에 데려와 사랑을 듬뿍 쏟았다. 매일 아침 파라그 박사는 엘리사를 챙겼다. 붙들고 설 수 있도록 특별한 버팀대도 만들어 주었다. 아이는 버팀대를 지지해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엘리사가 혼자서 걷게 되었을 때 부부는 환호성을 질렀다. 현재 엘리사는 17세 학생으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는 음악 연주자이다.
또 다른 이야기가 더 있다. 탯줄이 붙은 채로 보육원에 온 아기가 있었다. 이 아기는 기차 안 화장실에서 발견되었고 눈도 뜨지 못한 상태였다. 그레이스 사모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쉐퍼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스포이트로 15분마다 수유했다. 갓난아기는 여러 날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쉐퍼드가 작은 소리를 내었다.
“저는 로켓처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그레이스 사모가 말했다. “그리고 쉐퍼드가 소리를 내었다고 소리치며 다녔죠.”
9살이 된 쉐퍼드는 건강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명랑한 학생이다.
“잊지 마세요.” 살림 박사 부부는 말한다. “이 아이들은 저마다 특별한 이유를 띠고 우리에게 온 거예요. 주님께는 이곳의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계획이 있으세요.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최고의 가정을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딕 더크슨 목사이자 이야기꾼이며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살고 잇다. 뉴스타트 어린이집과 사역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다음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Africaorphancar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