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되는 성경 구절 (74) 마가복음 7장 2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 7:27)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본 구절은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을 당혹하게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예수께서 한 이방 여인에게 무정하고 거친 언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인 한 여인을 “개”라고 지칭하며 경멸적인 언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딸을 위한 이방 여인의 도움 요청을 예수께서 거절하려는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수로보니게 여인 이야기(막 7:24-30)의 배경과 결말, 본 구절을 통한 예수님의 의도와 목적 또 “개”라고 번역된 원어의 뉘앙스 등을 살펴보면 당혹감은 곧 사라진다. 오히려 한 이방 여인의 슬픔을 덜어 주고자 하신 예수님의 진심 어린 동정심을 보게 하며, 동시에 당시 유대인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편견과 그로 인한 그들의 냉정하고 무정한 태도를 드러내 준다. 첫째, 예수께서는 이미 이 이방 여인의 사정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계시던 곳에서 “일어나서 거기를 떠나 [의도적으로] 두로 지방으로” 가셨다(막 7:24). 그리고 결과적으로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간구를 들어주셨다.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 7:29). 이 사실에 대한 엘렌 화잇의 통찰은 도움이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여인의 사정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그 여인이 자신을 만나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고 그 여자가 있는 길로 오셨다. 그분께서는 그 여인의 슬픔을 덜어 주심으로써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교훈을 실제로 보이실 수 있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이런 목적으로 제자들을 이 지방에 데려오셨다”(소망, 400). 둘째, 왜 예수께서는 딸을 위하여 간청하는 이방 여인의 기도를 단번에 들어주지 않고 그녀를 “개”에 비유하면서 대화를 이어 가셨는가? 이유는 여인을 “개”처럼 경멸하셨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편견과 그로 인한 무정하고 경멸적인 태도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으며 또 제자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편견을 버리고 슬퍼하는 자들을 인정 많게 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인의 요구에 즉시 응답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유대인들이 으레 그렇게 하였으리라고 생각되는 태도로 이 경멸받는 민족의 대표자를 응대하셨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써…유대인들이 대하였으리라고 생각되는 냉정하고 무정한 태도를 제자들이 마음에 새기게 하셨다. 또 뒤이어 그 여인의 간원을 들어주심으로써 예수께서 슬퍼하는 자들을 어떻게 인정 있는 태도로 대하시는지 제자들이 명심하게 하실 작정이었다”(앞의 책, 400). 셋째,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녀의 떡을 취하여” 던져 주는 “개”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더러운 것을 먹어 치우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길거리 개(street dog)’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대신에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pet dog)’ 혹은 집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작은 ‘강아지(puppy)’를 지칭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예수께서 사용하신 “개(헬라어, 퀴나리오이)”라는 표현은 부정적이고 거친 의미의 “개(헬라어로 퀴네스, 눅 16:21; 계 22:15 참고)”와는 다르게 다정하고 부드러운 뉘앙스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본 구절을 비참한 형편에 처한 이방 여인의 간구를 듣지 않거나 돕지 않으려는 예수님의 거절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개”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을 예수께서 이방인들을 향한 부정적이며 경멸적인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당시 유대인들의 편견을 허물고, 슬퍼하는 자들을 인정 있는 태도로 대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강렬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지상훈 토론토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