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비밀-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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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같은 해외 생활?
코로나가 한층 기승을 부리던 작년, 베트남에 있는 호찌민에서의 근무가 결정되었다. 평소에 라디오나 책 등을 통해 ‘해외 한 달 살기’ 같은 내용을 접할 때면 해외 생활은 나에게 있어 이국적인 로망으로 가득했다. 특히 예전 여행을 통해 베트남은 따스한 햇살, 야자수가 드리워진 풍경, 맛있는 과일 등으로 기대되는 나라였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가득 담아 긍정 회로를 돌리며 준비를 해 나갔으나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처럼 실상은 정반대였다.
기간이 다 끝나지 않은 전셋집을 비우는 것에서부터 대부분의 집안 살림,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의 정리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가 입국할 당시에는 코로나로 인해 베트남 입국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은 사람만 몇 대의 특별기를 통해서 베트남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온 가족이 조심하고 또 조심했으나 출국하기 하루 전, 운명의 장난처럼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탑승을 하지 못했다. 온갖 불안한 마음이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을 엄습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마지막 특별기 운행 전날 음성 판정을 받아 겨우 베트남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지난 3개월간의 우여곡절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호찌민시 탄손녓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늦은 밤이었지만 우리 가족을 환대해 주신 멘토 선생님의 미소와 꽃다발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위로도 잠시, 정착하는 과정은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둘러업고 뜨거운 태양 빛 아래에서 10개가 넘는 집을 보러 다녔던 기억은 한여름에 완전 군장을 메고 끝없이 걸었던 행군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 들이마실 때 덥고 내쉴 때 더 뜨거운 습도와 온도가 사람을 더욱더 지치게 했다. 아이들을 위해 항상 물을 챙겨서 다녀야 했고, 날씨보다 뜨거운 햇살 때문에 반팔이 아닌 긴팔을 입어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몸만큼이나 가족들의 마음이 지쳐 가는 것이었다. 살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번역기를 써서 소통해야 하는 아내, 생애 첫 학교생활을 해외에서 시작해 적응이 두 배로 힘들었던 아들, 겨우 찾은 어린이집이 낯설어 매일 울던 딸을 보는 것이 나 역시도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 내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사소한 것에 불평이 생기고, 매사에 후회와 불만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던 중 어느 날 아이들이 서로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싸우고 있었다. “너희들은 각자 장난감이 얼마나 많은데 감사할 줄 모르고 이렇게 하루가 멀다고 싸우기만 하니? 내가 없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해 봐. 얼마나 행복해지니?” 그 순간, 감사보다 불평이 많은 것은 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처한 상황의 불만 요소들을 감사로 바꿀 수만 있다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래 이거다. ‘자족’하는 마음!
불평에서 감사로
먼저 내가 가장 불편하고 불만인 것들을 추려 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첫째, 뜨거운 더위가 불만이었다. 차분하게 이게 정말 불평의 대상인지 여기서는 감사할 조건이 전혀 없는지 찾아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처음에 시내를 걸어 다니는 것에 비해 이제는 밖에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고, 건물 대부분에서 에어컨이 나왔으며 때로는 에어컨 바람이 질릴 때는 따스한 햇살이 반갑기까지 했다. 또한 이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즐길 수 있는 야외 활동의 종류가 다양했으며 망고, 두리안, 리치 등 싱그러운 과일들을 값싸고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한 끼라도 과일이 없으면 안 되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이는 어찌 보면 더없는 감사의 조건이었다.
두 번째는 외로움이었다. 주변에 친인척뿐 아니라 지인이 없었기에 의지할 곳도, 마음을 쉽게 나눌 곳도 없어 많이 외로웠다. 하지만 생각을 살짝만 뒤집어 보니 이는 온전히 가족만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사소한 대화부터 자전거 타기, 보드게임 하기, 산책하며 곤충 찾기 등 많은 것을 우리 가족끼리만 집중해서 할 수 있었다. 특히나 퇴근 후에 더위로 축 처진 아이들과 집 앞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미소가 하루의 모든 피로를 날리기에 충분했다. 또한 수영장에서 만나는 또래 아이가 늘어나면서 아들과 딸은 언어에 상관없이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고, 시원하게 수영을 즐긴 후 잔잔하게 물드는 노을과 함께하는 저녁 식탁은 차츰 우리 가족의 감사의 순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빠의 얼굴을 짧게만 보던 아이들과 더불어 평소에 일로 인해서 뒤집혔던 삶의 우선순위가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이곳에서의 삶도 행복할 수 있다는 긍정의 신호탄이 되었고 외로움은 행복함으로 변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차가 없다는 점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덥고, 짐은 무겁고, 그렇다고 매번 택시를 타기엔 돈이 아까워 한국에서 운전했던 차가 그리웠다. 그러나 차량 관세가 200%나 되는 나라에서 차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여기서는 어떠한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우선 한국에선 매일 120km를 운전했던 나에게 있어 통근 버스로 10분 걸리는 출퇴근길은 끊이지 않는 감사 기도를 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껴진 시간에 아내와 함께 아침 조깅을 하기로 했다. 베트남은 해가 뜨면 바로 뜨거워지기 때문에 해뜨기 전에 많은 사람이 조깅을 한다. 아내와 함께 걸으면서 대화도 하고, 땀 흘리면서 운동도 하다 보니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밝은 아침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돌아오는 길에 사 오는 싱싱한 망고와 아보카도로 만든 스무디는 온 가족의 몸을 활기차게 해 주었다. 이 조건은 평소에 아내와 함께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한 아쉬움과 운동 부족, 허기졌던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선물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전 용기를 내어 구매한 오토바이는 비록 차만큼 쾌적하진 않지만 무거운 짐을 옮겨 주고, 좁은 좌석으로 인해 가족끼리 강제 허그를 하게 해 주는 또 다른 감사의 촉매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이렇게 세 가지의 불평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고 난 뒤 우리는 가정 예배를 통해 매일매일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감사의 조건들을 발견하고 말하는 시간을 갖는다. 5살 딸아이도 예외는 없다. 행복을 만들어 내는 근육은 반복 숙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되새기면서.
그렇다면 나의 상황과 조건을 바꾸지 않고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그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먼저 나의 불만을 차분하게 바라보자. 대다수의 걱정과 불만이 우리의 생각보다 크진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속에서 감사의 씨앗을 찾으려고 목숨을 걸고 노력해 보자. 먼지만큼이라도 그것이 보인다면 ‘자족’이라는 양분으로 더욱 키워 보자. 그렇게 ‘행복’이라는 꽃은 피어날 것이다. ‘핑크 대왕 퍼시’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안경을 핑크색으로 바꿨듯이 우리의 눈을 ‘자족’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물들여 ‘행복’만 바라봄이 어떨까?
- 조현수 호찌민시 한국국제학교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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