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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하게 빛나는 제2의 전성기 빠쓰또리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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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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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오후 3시, 시끌벅적한 강당의 열기가 때 이른 더위 못지않게 뜨겁다. 모임 시간 정각부터 빈자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총무 김길형 목사가 반가운 후원 소식을 먼저 전한 뒤 배영길 목사가 시작 기도를 드린다.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아름다운 믿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목사님과 사모님들 연세가 많아졌지만 늘 강건하게 역사해 주시며 지휘자에게도 함께하시어 즐겁고 기쁘고 영광스럽게 찬양할 수 있도록 지혜와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지휘에 나선 류재광 교수가 대뜸 첫 기도에 대해 딴지를 건다. “배 목사님이 기도에서 우리가 나이 들었다고 하셨는데요. (좌중 웃음) 이제 시작 아닌가요? 우리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오늘도 멋지게 시작해 보자구요. ‘내 평생에 가는 길’….”


절절하면서도 굳센 믿음이 담긴 곡의 배경을 설명한 뒤 파트별 연습을 시작한다. 1시간쯤 지났을까? 이윽고 힘찬 합창이 한국연합회 강당을 쩌렁쩌렁 울리며 그날의 모임이 마무리된다. 은퇴 목회자와 사모들이 결성한 합창단 빠스또리의 연습 현장이다.



평생 전한 말씀, 이제는 음악으로

빠스또리는 지난 4월 29일에 창단했다. 이탈리아어로 목자를 뜻하는 ‘파스토레(pastore)’의 복수형인 ‘파스토리’를 현지 발음에 가깝게 부른 명칭이다. 


“합창단을 제일 처음 제안한 분은 류재광 교수님이세요.” 단장인 홍명관 목사가 지휘자를 치켜세우자, 류재광 교수는 곧바로 목회자들에게 공을 돌린다. 


“여러 목사님과 의논해서 된 일이이죠. 간곡한 청을 목사님께서 들어주셔서요. 은퇴하신 목사님들은 사실 교단의 재산이잖아요. 평생 말씀을 전한 분들이 이제는 음악으로, 노래로 의미를 나눌 길을 생각한 게 이 합창단이에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매월 둘째·넷째 주 월요일, 한 달에 두 번 모이는 이 시간이 소중해 결석하는 단원이 거의 없다. 멀게는 강원도 홍천에서도 부부가 달려온다.


“이 좋은 걸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나 몰라.” 


아쉬움을 가장한 흐뭇한 한숨 소리와 함께 홍명관 목사가 창단 배경을 설명했다. “2년 전부터 이야기가 있었지만 처음에는 별 의미를 못 느꼈는데 생각할수록 와닿는 거예요. 올해가 선교 120주년이잖아요. 선교 역사의 기초를 다졌던 분들이 의미 있는 감동을 선사하면 좋겠다 싶었지요. 은퇴하면 서로 만날 기회가 흔치 않아 외로울 수밖에 없는데 이런 모임으로 한 달에 두 번씩 만나니 삶의 의미도 커지고요. 막상 해보니까 너무들 좋아하시는 거예요.”



“뇌세포가 살아나는 느낌”

합창단은 선교 120주년 행사 공연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지만 교회 선교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청사진도 품고 있다. “합창단을 하면서 교회 선교에 바람을 불어넣는 데 뭔가 기여해야겠다는 결심이 목사님들 사이에 생겼어요. 매년 합회별로 몇 지역을 선정해 팀을 구성하고 찬양과 설교로 집회를 이끌 계획이에요. 후원금도 우리가 직접 마련해서요.”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이는 연습 현장에는 이날도 72명이 참석했다. 단원들은 개인적으로 어떤 유익을 경험하고 있을까?


“은퇴하고 지방에서 생활하는데 2주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 기다려지고 정해 주신 곡들을 집에서도 늘 흥얼거리고 명상하면서 지내는 시간들이 너무 좋은 거예요.” 현역 시절에 사모 합창단으로 활동했던 최청자 사모(명득천 목사)는 그 끈이 계속 이어져 매일 찬양을 연습하니 삶에 활력이 생긴다고 말한다.


곁에 있는 안일수 사모(김길형 목사)는 “뇌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보통 합창단은 각자 다른 일을 하다 만나지만 같은 일 하는 분들이 이렇게 함께 모이기가 쉽지 않지요. 평소의 찬미와 달리 합창이라는 목적으로 노래하니 마음도 젊어지는 기분이에요.”


장미향 사모(정순성 목사)에게 빠스또리는 힐링의 현장이기도 하다. “현직에 있을 때 교회에서 어려운 일을 교인들과 다 이야기할 수 없잖아요. 사모 합창단을 하면서 서로 만나 위로하고 감싸 주며 힘을 얻었는데 은퇴 후 그런 기회가 다시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장주녀 사모(홍명관 목사)는 “음대 성악과에 입학한 기분”이라고 했다. “차 안에서도 계속 발성을 연습하고, 학생이 된 것처럼 ‘어떻게 호흡을 길게 할까, 고음도 잘 나게 할까?’ 집에서도 마음을 쏟으며 하나님께 더 고양된 마음으로 영광 돌릴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해요. 삶의 에너지가 팍팍 생기고 남편 연습까지 시켜야 하니 아픈 걱정할 새가 없어요(웃음).”


홍명관 목사는 대학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합창단에 섞여본 일이 없었다. “노래는 혼자만 해 봤지. 그런데 합창에 참여하면서 나 자신부터 아주 재미가 있는 거라. 지휘자가 워낙 카리스마 있게 이끄시니까 음악 공부도 되고. 그러니 이렇게 오지 재미 없으면 올 리가 있겠어요? 또 밥까지 주잖아요. 말 그대로 코이노니아예요.



“우리는 창단 멤버일 뿐”

운영 경비는 한국 교회 선교를 고취하고자 은퇴 목회자들이 마련해 오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김길형 목사는 “창립 기념 음악회도 하고 합회마다 전도회를 계획해 대도시로 다니며 교인들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 줄 생각”이라면서 “뉴욕, 워싱턴, LA 등지로 순회공연도 구상 중”이라고 귀띔했다. 


지휘자로서 얻는 보람에 대해 물었더니 류재광 교수는 “보람 정도가 아니라 영광”이라고 대답한다. “교단에 적어도 30~40년간 몸담고 헌신한 분들과 함께 노래한다는 건 굉장한 영광이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연습이죠(웃음). 빠스또리는 잠깐만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이어질 거예요. 목사님들이 계속 들어오실 테고 지금은 제가 하지만 음악을 전공한 목사님들도 계시니 그런 분들이 앞으로 이어서 지휘하실 수도 있고요.”


홍명관 목사도 “우리는 창단 멤버일 뿐”라고 힘주어 말한다. “120주년 찬양 발표 이후에는 아마 은퇴 목사님들이 여기저기서 더 많이 가담하실 거예요. 지금도 단원 중 아무나 붙들고 ‘합창단 하니 어떠냐?’고 한번 물어보세요. 대답은 한결같을 거예요.” 


하늘이 불그레한 사진은 아침놀인지 저녁놀인지 분간하기 힘들 때가 있다. 빠스또리 합창단 연습 현장에서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쪽 창가로 번지는 부드러운 햇볕에 단원들의 얼굴이 은은하게 빛났다.



​김효준 ​교회지남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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